늦여름 물가에 지름 1~2 m까지 벌어진 둥근 잎이 떠 있습니다. 잎맥과 줄기에는 가시가 촘촘히 돋아 있어 맨손으로는 잡기 힘듭니다. 가시연입니다. 잎만 보아서는 그 아래에 먹을 수 있는 씨앗이 들었다고 짐작하기 어렵죠. 텃밭 한쪽에 물통을 묻어 연을 기르는 분들은 이 잎을 보고 나면 검색창에 비슷한 질문을 적습니다. 씨앗을 먹어도 되는지, 한 포기 심어도 되는지, 가게에서 파는 흰 알갱이 간식이 이것과 같은 것인지 말입니다.
닭 머리를 닮았다는 옛 이름
《동의보감》 果部에는 이 씨앗이 芡仁으로 실려 있습니다. 잎이 연잎처럼 크고 주름지며 가시가 있다고 생김새를 적었고, 열매가 닭 머리를 닮아 雞頭實이라 불렀다는 이름 풀이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옛 의서의 기록이니 오늘날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다만 생김새 묘사만큼은 지금 물가에서 보는 것과 그대로 맞습니다. 열매 껍질에도 단단한 가시가 나 있어, 씨를 꺼내려면 두꺼운 장갑이 필요합니다.
심어도 되는지부터
한국에서 가시연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저수지나 습지에서 열매를 따거나 뿌리째 캐는 일은 물론이고 가공·유통·보관·양도까지 원칙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인공으로 늘려 기르려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이 종자를 구해 텃밭 물통에 심는 합법적인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생지는 인도·중국·한국·일본에 걸쳐 있고 보호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니, 물가 식물을 옮겨 심기 전에 사는 곳의 규정을 먼저 확인해 보세요.
재배가 허용된 곳에서는 북반구 기준 4월에 씨를 넣고 8~9월에 열매를 거둡니다. 생육 달력과 궁합은 가시연밥 작물 도감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봉지에 든 흰 알갱이
가게 선반의 마카나(makhana)는 야생에서 따 온 것이 아닙니다. 인도와 중국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고 가공해 들여온 식품입니다. 씨를 볶아 만든 간식이고, 인도에서는 우유에 끓여 키르(kheer)라는 죽으로도 먹습니다. 한국에서는 죽을 쑤거나 가루로 빻아 썼습니다. 그러니 보호 규정과 이 간식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규정이 막는 것은 물가에 남은 야생 가시연이고, 봉지에 담긴 것은 관리하는 못에서 길러 낸 농산물입니다.
거의 전분인 씨앗
가시연밥은 곡류가 아니지만 성분으로 보면 거의 전분입니다. 열량은 대부분 여기서 나옵니다. 전분이 많은 씨앗 가운데는 단백질이 많은 편이고, 칼륨과 마그네슘이 들어 있으며 나트륨은 거의 없습니다. 플라보노이드나 폴리페놀 같은 페놀 계열 화합물도 있습니다. 가시연 씨 추출물의 항산화 작용을 시험관과 동물 실험에서 확인한 보고가 있습니다. 다만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식사에 조금 보태는 정도로 여기시면 됩니다.
거의 전분이라는 말은 많이 먹으면 그만큼 열량과 혈당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번에 한 줌 정도가 적당합니다. 옛 기록은 芡仁에 새는 것을 거두는 성질이 있다고 보았으니, 평소 배변이 원활하지 않다면 양을 줄여 보세요.
부엌에서 하는 일
- 마른 팬에 볶다가 소금만 뿌리면 집어 먹는 간식이 됩니다. 기름을 쓴다면 아주 조금만 둘러야 눅눅해지지 않습니다.
- 볶은 뒤에는 완전히 식혀 밀폐 용기에 담아 보세요. 온기가 남은 채로 담으면 눅습니다.
- 볶은 것을 갈아 우유나 쌀죽에 섞으면 전분만으로는 모자란 단백질과 칼슘이 채워집니다. 씹는 힘이 덜 들어 어르신이나 아이 식사에 넣기 좋습니다.
- 죽이나 차에 말린 대추를 함께 넣어 보세요. 단맛이 붙어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되고, 대추의 신맛이 밋밋한 전분 맛을 잡아 줍니다.
덜 익은 씨는 떫고 딱딱해 그대로 먹기 어렵습니다. 쪄서 껍질을 벗긴 뒤 쓰시고, 손질할 때는 두꺼운 장갑을 끼세요.
오늘 할 일은 하나입니다. 집에 있는 봉지 뒷면을 뒤집어 원산지와 재배 표기를 확인해 보세요. 물가에서 따 온 것이 아니라 길러 낸 것이라면, 마음 편히 팬을 올려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