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의 텃밭에는 여름 작물을 걷어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고추 대를 뽑고 남은 이랑을 그대로 두기 아깝다면, 이때 뿌려 둘 씨로 고바기(Ixeridium dentatum)가 있습니다. 북반구 기준 9월에 뿌린 씨는 서늘해지는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잎은 겨울을 견딘 뒤 이듬해 봄에 다시 올라옵니다.
잎을 끊으면 흰 즙이 배어 나오고, 씹으면 쓴맛이 먼저 옵니다. 오늘은 씀바귀와 고들빼기로 갈라 부르지만, 옛 의서는 이 잎들을 한 이름으로 묶어 적어 두었습니다.
《동의보감》이 적어 둔 고채
《동의보감》 채부(菜部)에는 고채(苦菜)라는 표제가 있고, 고바기는 그 항목에 함께 적힌 한국어 이름입니다. 성질이 차고 맛이 쓰며 독이 없다고 적으면서, 조금 독이 있다는 다른 견해(一云小毒)도 지우지 않고 나란히 달아 두었습니다. 들에 나며 겨울을 넘겨도 죽지 않아 유동(遊冬)이라는 다른 이름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잎은 고거(苦苣)를 닮았으나 가늘고, 끊으면 흰 즙이 나오며, 꽃은 노랗고 국화를 닮았다고 생김새도 적었습니다. 캐는 때는 음력 3월 3일, 캔 뒤에는 그늘에서 말린다고 적었습니다. 400여 년 전 의서의 기록이므로 오늘의 기준과 다르며, 병을 고친다는 뜻으로 읽을 자리는 아닙니다. 원문과 풀이는 《동의보감》 고채 항목에 옮겨 두었습니다.
오늘의 성분표와 견주면
겹치는 곳이 먼저 눈에 띕니다. 맛이 쓰다는 기록은 세스퀴테르펜 락톤(sesquiterpene lactone)이라는 쓴맛 성분으로 설명됩니다. 끊으면 흰 즙이 난다는 관찰도 밭에서 그대로 확인됩니다. 겨울을 넘긴다는 기록 역시 가을에 뿌린 포기가 이듬해 봄 잎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곳도 있습니다. 옛 기록은 성질이 차다는 말로 몸에 닿는 작용을 적었지만, 오늘 성분표는 다른 이름을 씁니다. 이눌린(inulin)은 장에서 발효되는 식이섬유이고, 베타카로틴·칼슘·철은 이른 봄 잎일수록 진하게 들어 있습니다. 국화과 쓴나물의 세스퀴테르펜 락톤을 놓고 항산화 활성을 잰 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다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잰 값이고, 나물 한 접시만큼 먹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쓴 잎 한 줌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 쪽에 두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심는 달과 거두는 달
북반구 기준으로 3~4월과 9월에 씨를 뿌립니다. 거두는 달은 4~6월과 10~11월입니다. 가을에 뿌렸다면 10~11월에 어린 잎을 조금씩 솎아 먹고, 남긴 포기는 겨울을 나게 두세요. 이른 봄 잎에 베타카로틴과 칼슘·철이 진하므로 4~6월 몫을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뿌리째 쓸 생각이라면 잎이 억세지기 전 봄에 캡니다. 들에서 절로 자라던 나물이라 거름을 많이 넣지 않아도 자리를 잡습니다. 달력과 성분은 고바기 작물 도감에 함께 정리해 두었습니다.
쓴맛을 받치는 법
- 고추장(gochujang, 고추를 넣어 담근 발효 장)에 식초를 섞어 무칩니다. 신맛과 단맛이 쓴맛을 받쳐 줍니다. 데친 뒤 물기를 꼭 짜세요. 그래야 무침이 묽어지지 않습니다.
- 들기름과 참깨로 무치는 쪽이 가장 무난합니다. 기름이 쓴맛을 눌러 주고, 잎의 베타카로틴도 잘 흡수됩니다.
- 뿌리째 소금에 절였다가 젓갈(jeotgal, 소금에 절여 발효한 생선 양념)과 마늘로 담그는 고들빼기김치는 발효로 쓴맛을 바꿔 놓습니다. 담근 뒤 2~3주는 지나야 쓴맛이 눅어집니다.
오늘 비워 둔 이랑 한 줄에 고바기 씨를 뿌려 보세요. 가을에는 어린 잎 한 줌, 봄에는 뿌리까지 거둘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