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 배나무 가지 끝에서 누렇게 익은 열매가 하나둘 무게를 더합니다. 한 알을 따서 껍질을 깎으면 칼날을 따라 즙이 흘러 손끝이 젖습니다. 북반구에서는 9~10월에 배를 거둡니다. 배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기르고, 한국·일본·대만에서도 많이 납니다.
배는 장미과 배나무의 열매입니다. 입안에서 오도독 씹히는 작은 알갱이는 석세포(stone cell)라는 단단한 세포 덩어리입니다. 입에서 부드럽게 풀리는 서양 배와 식감이 다른 이유가 이 석세포에 있습니다.
배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배나무는 씨를 뿌리지 않고 묘목을 심어 기릅니다. 북반구에서는 3월이나 11월에 심으며, 기르기는 까다로운 편입니다. 10~32℃에서 자라고, 가장 잘 크는 온도는 20~25℃입니다. 겨울 휴면기에는 영하 20℃ 안팎까지 견딥니다.
이 나무는 겨울에 일정 시간 이상 낮은 기온을 겪어야 이듬해 꽃이 고르게 핍니다. 꽃눈은 낮 길이보다 기온을 따릅니다. 겨울 저온을 채운 뒤 봄 기온이 오르면 그때 틉니다. 그래서 겨울이 따뜻한 지역에서는 꽃이 들쭉날쭉 필 수 있습니다. 4월 개화기에 늦서리가 내리면 그해 수확량이 줄 수 있고, 7~8월에 물이 모자라면 열매가 잘아집니다.
과육을 채운 물과 소르비톨
배는 수분이 85%를 넘습니다. 한 입 베어 물면 과즙부터 입안에 퍼집니다. 목이 마른 오후에 몇 조각 먹으면 물기와 단맛이 함께 들어옵니다.
배에는 소르비톨(sorbitol)도 들어 있습니다. 소르비톨은 당알코올(sugar alcohol)의 한 종류로, 단맛이 나지만 소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습니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옛 기록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은 소르비톨은 대장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배를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속이 부글거리거나 변이 묽어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이 예민한 분이라면 조금씩 나눠 드시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배 자체를 사람에게 먹여 살핀 연구는 드뭅니다. 배에 관한 건강 이야기는 많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수분과 소르비톨이라는 성분까지입니다.
1613년에 간행된 한국 의서 《동의보감》의 果部(과일 편)에는 배가 梨子(이자)로 실려 있습니다.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면서 약간 시며, 독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는 옛 의서의 기록이지 현대 의학의 판단은 아닙니다.
몸 사정에 맞춰 먹는 법
우선 제철 생배를 깎아 몇 조각씩 나눠 드셔 보세요. 물을 따로 챙기기 어려운 날에는 식사 사이에 천천히 드시면 수분을 보태기 좋습니다.
- 즙을 낼 때는 씨와 씨방을 빼고 과육만 갈아 보세요.
- bulgogi(간장 양념에 재운 소고기 구이)를 만들 때 배를 갈아 넣어 보세요. 고기가 연해지고 단맛이 더해지며, 설탕만 쓸 때보다 뒷맛이 깔끔합니다.
- 날이 차가워지면 baesuk(생강과 꿀을 넣고 쪄 낸 배 음료)을 만들어 보세요. 배 윗부분을 잘라 속을 파내고 생강과 꿀을 채운 뒤 찝니다. 성질이 찬 배에 따뜻한 생강을 더해 균형을 맞추려던 옛 조리법으로, 겨울에 오래 즐겨 마셨습니다.
오늘 배 한 알을 사 오셨다면 절반은 씨방을 도려내 생으로 나눠 드시고, 남은 절반은 갈아 두었다가 이번 주 bulgogi 양념에 넣어 보세요.
출처: 《동의보감》 果部 梨子 · 국립원예특작과학원(한국 원예 연구기관) 재배 자료
